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이 같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삼성전자 중국 생산 기지의 제3국 이전을 집중 조명했다. 애플을 비롯한 제조 기업들이 최근 ‘탈(脫)중국’을 외치며 베트남, 인도로 향하고 있는데 이미 삼성은 일찌감치 중국을 떠나 그곳의 터줏대감이 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라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한때 중국 스마트폰 시장 1위 업체였다. 10년 전인 2013년만 해도 20%에 육박하는 점유율(19.7%)로 중국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했다. 중국 화웨이(11%), ZTE(7%)는 물론 애플(6%)도 적수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샤오미·화웨이·오포·비보 등 ‘현지 4총사’가 급부상했고, 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까지 가시화하며 2018년 충격적인 0%대 점유율(0.8%)을 기록했다. 세계 1위 TV 사업도 중국에선 4.9% 점유율로 10위에 그쳤다.
이 상태가 지속되자 이듬해인 2019년 삼성은 톈진과 후이저우에 있던 휴대폰 공장을 모두 철수했다. 톈진의 TV 공장도 함께 문을 닫았다. 현지 인건비 역시 가파르게 상승하던 때였다. 2013년 6만명에 달했던 중국 현지 인력은 지난 2021년 1만7820명으로 70% 이상 줄었다.
"한국은 반도체, 부품 및 기술 익스포저가 약 60%에 달하기 때문에 현재 가장 선호하는 국가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중국의 대체 국가들이 글로벌 투자자들의 구애를 받고 있다. 중국 증시가 올해 들어 고점 대비 20%가량 뒤로 밀린 반면 한국과 대만, 인도, 일본 증시는 일제히 랠리다. 글로벌 자금이 아태 포트폴리오에서 중국 비중을 줄이면서 반사이익을 보고 있는 것.
중국 빠진 '아시아 랠리', AI 특수+엔저+내수의 힘
코스피 지수는 생성형 인공지능(AI) 구현에 필수인 칩 제조사 엔비디아가 주목받자 지난 31일 약 1년 만에 장중 최고점을 찍으며 2600에 바짝 다가갔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반도체 파운드리 경쟁력이 재조명되면서다. 북한의 우주발사체 발사로 서울 시민이 이른 아침 패닉에 빠진 상황에서도 외국인의 매수세는 꿋꿋했다. 지난 31일까지 6거래일 간 외인은 2조1189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UBS 웰스매니지먼트의 아태지역 투자 및 신용책임자 하트무트 이셀은 블룸버그에 "한국은 반도체, 부품 및 기술 분야 익스포저가 약 60%로 현재 우리가 가장 선호하는 국가"라고 밝혔다. 이어 "(반도체) 가격 (하락)은 이미 생산원가에 영향을 미쳤고 재고 소화과정이 진행 중"이라며 "반도체 섹터는 자본지출 계획을 줄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나의 중국'을 외치는 중국의 위협이 거세지만 TSMC를 중심으로 대만 자취안 지수도 올해 저점에서 16%가량 상승했다. 한국, 대만 모두 기술집약적인 반도체 제조국이란 점에서 AI 열풍 속 글로벌 투자자들의 러브콜이 이어진다. 반도체 사이클상 바닥을 치고 턴어라운드 시점이 오고 있다는 기대감도 깔렸다.
일본도 닛케이 지수가 33년 만에 최고가를 기록하는 등 고공행진 중이다. 엔저로 수출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되자 저평가됐다는 인식이 퍼졌고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이 5대 종합상사 주식에 투자하면서 외인의 매수세가 이어졌다. 닛케이 지수는 올 들어 20% 이상 뛰었다.
인도의 센섹스 지수도 사상 최고치에 근접했다. 인도는 올해 1분기 예상을 뛰어넘어 6.1%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2022/2023 회계연도(2022년 4월~2023년 3월)의 성장률을 기존 추정치보다 0.2%포인트 높은 7.2%로 상향 조정했다. 민간소비가 16년 만에 최고치로 강력한 회복세를 보이며 중국의 대항마로 부상했다.
아태지역 투자펀드, 중국 비중 낮춘 수혜효과
반면 중국 상하이 지수는 지난달 5%가량 빠지며 최악의 시기를 보냈다. 미·중 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를 차치해도 제조업 경기 회복이 느리다. 5월 중국 PMI(구매관리자지수)가 48.8로 두달 연속 하락했다. 50 이하는 경기 위축 상황을 의미한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이를 반영해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고 있다. 영국 투자회사 Abrdn의 아시아 주식투자 이사 크리스티나 운은 "중국 이외의 아시아 국가들에 절대적으로 많은 기회가 있다"며 "한국은 배터리 및 기술 공급망 내 투자할 많은 기업이 있고, 대만은 TSMC 외에도 여러 기업들이 있으며, 일본에는 해당 분야의 세계 리더들이 있다"고 밀했다.
HSBC홀딩스에 따르면 중국에 대한 글로벌 펀드의 자산 할당은 지난해 10월 수준으로 다시 떨어졌다. 5월 중국 국내펀드 판매는 2015년 이후 최저치로 하락했다. BNY멜론투자운용은 지난주 중국에 대해 중립 포지션을 취했다. 씨티그룹의 글로벌자산 배분팀도 지난 26일 부양책 부족을 이유로 중국에 대한 포지션을 중립으로 바꿨다.
BNY멜론투자운용의 아시아 거시 및 투자전략 책임자 아닌다 미트라는 "중국에서 빠져나온 자산의 재할당이 아시아 대부분으로 분산돼 보다 넓은 지역적 랠리를 촉매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인구가 줄고 산업이 성숙해지면서 과거의 고성장을 재현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예측 불가능한 규제 환경도 투자를 꺼리게 하는 요인이다. 골드만삭스그룹의 수석 아태 주식 전략가 티모시 모는 블룸버그TV에 "중국 투자에 대해 훨씬 더 구체적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며 "중국의 장기 전망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많은데 이는 중국에 대한 투자자들의 욕구가 단기적으로 가라앉을 것임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인도 구자라트주 반도체·디스플레이 팹이 들어설 돌레라 특별투자지역 개요. 전자신문DB
반도체 5대 강국 도약을 예고했던 인도 정부 계획에 적신호가 켜졌다.
인도에 첫 반도체 제조 공장을 설립하려던 국제 반도체 컨소시엄 ISMC 투자 진행이 중단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인도 구자라트주에 대규모 반도체·디스플레이 팹을 구축하려던 베단타 그룹 역시 사업 파트너 확보에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4월 베단타그룹 주요 임원이 방한,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과 파트너십과 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베단타그룹은 올 연말 인도 구자라트주에 반도체·디스플레이 팹 착공을 시작해 디스플레이는 2026년, 반도체는 2027~2028년부터 본격 양산할 계획이다.
베단타그룹과 사업 협력을 검토 중인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은 현지 상황에 따라 인도 진출을 유보해야 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예의주시하고 있다.
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ISMC의 인도 반도체 공장 설립이 교착 상태에 놓였다고 보도했다. ISMC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기반을 둔 넥스트 오르빗 벤처와 이스라엘의 타워세미컨덕터의 합작 투자사다. 30억달러를 투자해 인도 카르나타카주에 반도체 제조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그러나 ISMC 내 유일하게 반도체 기술력이 있는 타워가 변수로 작용했다. 인텔은 지난해 2월 타워 인수 계획을 발표했지만 중국 등 각국 반독점 규제당국 심사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인텔의 타워 인수가 완료돼야 ISMC가 인도 반도체 공장 설립을 위한 절차에 착수할 수 있다. 타워는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으로 가전·자동차 등에 필요한 센서, 마이크로 컨트롤 유닛(MCU) 등을 제조하고 있다. 타워가 참여하지 않으면 반도체 기술 부재로 공장 설립이 무산될 수 있다.
또 베단타그룹과 대만 폭스콘이 설립한 합작회사를 중심으로 추진되는 구자라트주 팹 구축 계획도 지지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로이터통신은 베단타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와 협업을 추진했으나 지분 등 양측 이견으로 논의에 진전이 없다고 전했다. ST마이크로 등 기술 파트너 확보가 어려워지면 구자라트주에 설립하려던 반도체 팹 건설도 중단되거나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 같은 상황이 해결되지 않으면 반도체 5대 강국 도약을 선언했던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에 좌절을 안겨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도 정부는 2014년 발표한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 일환으로 자국 내 반도체 제조 공장 설립과 해외 기업 유치를 추진해왔다.
국내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미·중 갈등 심화로 인도가 반도체 등 산업 대체 지역으로 검토되고 있지만 산업단지 등 인프라가 아직은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인도 현지 불안정한 전력 공급이나 수자원 부족, 전문 인력 부재 등 문제도 남아있어 인도 진출 여부를 신중히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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